지아니의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에 대해서 글을 작성합니다.

  • 2025. 5. 13.

    by. 지아니13

    목차

      1. 왜 여성 발명가는 역사에서 잊혀졌는가

      역사책과 과학 교과서를 보면, 혁신의 순간마다 등장하는 이름은 대개 남성이다.
      에디슨, 벨, 다빈치, 뉴턴...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이 ‘위대한 이름’들 사이에서,
      수많은 여성들은 발명과 발견의 주체였음에도 불구하고 기록되지 않았다.

      그녀들은 사회가 부여한 ‘여성의 역할’에 갇혀 있었고,
      자신의 발명을 남편, 형제, 아버지 이름으로 특허 출원하거나,
      아예 특허조차 낼 수 없는 환경에서 기술을 실현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잊힌 천재들을 복원해야 한다.
      그녀들의 이름은 사라졌지만, 발명은 여전히 우리의 일상에 남아 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여성 발명가들, 세상을 바꾼 10가지 이야기

      2. 마거릿 나이트 – 자동 종이봉투 기계의 어머니

      19세기 미국, 산업화가 본격화되며 도시 곳곳에 공장과 매장이 생기던 시기,
      ‘포장’은 점점 중요한 산업적 요소가 되었다.
      바로 이 시기에 **마거릿 나이트(Margaret E. Knight, 1838~1914)**라는 이름 없는 여성 기술자가
      오늘날 쇼핑백의 원형을 만든 혁신적인 기계를 발명한다.

      마거릿은 어린 시절부터 기계와 친숙했다.
      12살 때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계 부품이 튀어나와 동료가 부상을 입는 사고를 겪은 뒤,
      “자동 정지 안전 장치”를 고안해 공장의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인 경험이 있었다.
      당시 특허를 신청할 나이도, 사회적 조건도 갖추지 못했지만
      그녀는 생애를 통틀어 ‘문제 해결’에 몰두한 발명가였다.

      가장 획기적인 발명은 1868년, 자동 종이봉투 제조기였다.
      이 기계는 종이를 절단하고, 밑면을 접고 풀을 바른 후 자동으로 봉합하여
      **바닥이 평평한 종이봉투(Flat-bottom bag)**를 대량 생산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전에는 일일이 손으로 접거나 바닥이 없는 형태의 봉투가 대부분이었기에,
      마거릿의 기계는 유통업, 식료품점, 의류 상점에 혁명적 편의성과 생산성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명은 곧 남성 동료 찰스 애넌(Charles Annan)에 의해 도둑맞게 된다.
      애넌은 공장 내부에서 나이트의 설계도를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 출원을 시도했고,
      법원에서도 “여성이 그런 정밀기계를 발명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기술적 능력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마거릿은 물러서지 않았다.
      직접 수천 장의 스케치와 설계 노트를 제출하며
      ‘나의 손으로 설계했다’는 기술적 증거를 조목조목 제시했고,
      최종적으로 특허를 되찾으며 미국 특허 역사상 여성의 기술적 정당성을 입증한 상징적 사례가 되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20건 이상의 특허를 보유하며
      자동 재봉기, 절단기, 벽돌 포장기계, 창문틀 장치 등
      다양한 실용 기술을 고안했고,
      여자 에디슨(Woman Edison)’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남성 중심의 산업사회 한복판에서 기술 천재로 살아갔다.

      하지만 그에 비해 그녀의 이름은
      교과서, 기업사, 대중사에는 여전히 부차적인 주석으로만 등장한다.
      이것은 단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여성이 발명을 했다는 사실이 ‘합리적으로 믿기지 않는다’고 여겼던 사회의 기록 방식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마트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종이 쇼핑백,
      그 바닥의 깔끔한 접힘은
      사실 한 여성의 고집, 기술, 법정투쟁,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천재성의 흔적이다.
      이제는 그녀의 이름을
      기계공학, 포장기술, 특허사 속에 당당히 복원해야 할 때다.

      3. 헤디 라마르 – 무선통신 기술의 선구자

      할리우드 황금기의 대표 여배우로 알려진 헤디 라마르(Hedy Lamarr, 1914~2000).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미국 MGM 스튜디오의 아름다운 스타로만 기억한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면 뒤에는,
      현대 무선통신의 기초를 설계한 이례적인 과학자의 모습이 있었다.

      배우 이전에 ‘공학 마니아’였던 라마르

      오스트리아 출신의 헤디 라마르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공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당시 여성에게 과학 교육의 기회는 제한적이었고,
      그녀는 ‘이공계 여학생’이 될 수 없었기에 연극 학교로 진로를 바꿔야 했다.

      하지만 과학에 대한 열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촬영장에서도 라디오 구조, 전파 주파수, 전자회로를 연구했고,
      실제로 작은 실험실을 집에 차려놓고 발명가로서의 꿈을 놓지 않았다.

      ‘주파수 도약 기술’ – 와이파이와 블루투스의 뿌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라마르는 독일 잠수함의 어뢰 통신 시스템을 교란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작곡가 조지 앤설(George Antheil)**과 함께
      **“주파수 도약 스펙트럼 기술(Frequency-Hopping Spread Spectrum)”**을 고안했다.

      이 기술은 신호를 여러 주파수로 분산 전송함으로써 도청과 방해를 막고,
      보다 안정적인 통신이 가능하도록 하는 원리
      다.
      오늘날 블루투스, 와이파이, GPS, 군용 통신의 핵심 원리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라마르의 기술은 당시 군 당국에 의해 ‘참신하지만 여성 발명가의 발명이라서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는 정부에 의해 “전쟁 채권 홍보 모델”로 차출돼
      미소로 채권을 팔게 된다.

      특허는 남았지만, 그녀의 이름은 지워졌다

      1942년, 그녀와 앤설이 공동으로 출원한 특허는
      미국 특허청 제2,292,387호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 특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실용화되지 않았고,
      수십 년 후 특허가 만료된 뒤에야 군용 기술로 채택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이름은 기술 산업에서 빠졌고,
      정작 그녀의 발명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과 기술자들만 영예와 수익을 가져갔다.

      기술의 여신인가, 고정관념의 희생자인가?

      라마르는 여배우로서 외모로만 평가받았고,
      기술자로서의 자질은 오랫동안 평가절하되었다.
      그녀는 말한다.

      “사람들은 나를 미모로만 본다. 하지만 나는 머리를 써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그녀의 말은, 단지 개인의 회한이 아니라
      재능을 외면하고 성 역할에 가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발이기도 했다.

      뒤늦은 복권: 오늘날의 재조명

      1997년, 미국 전자통신 협회는 그녀에게
      **“전파통신 개척자 상(Pioneer Award)”**을 수여하며
      그녀의 과학적 공로를 공식 인정했다.
      사망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Bombshell: The Hedy Lamarr Story》를 통해
      그녀의 진짜 정체성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라마르가 없다면 오늘날의 와이파이도, 블루투스도, GPS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름다움에 가려진 천재가 아니라,
      시대를 너무 앞서간 과학자이자 여성 발명가였다.
      이제는 그녀의 이름을 통신 기술의 역사 속에 당당히 복원할 때다.

      4. 메리 앤더슨 – 자동차 와이퍼의 발명자

      1902년 겨울, 눈과 비가 뒤섞인 날씨 속에서 뉴욕의 번화한 거리를 운전 중이던 한 기사가
      수시로 차를 세우고 유리창을 닦는 모습을 보고 한 여성이 질문했다.
      “왜 안에서 조작할 수 있는 장치가 없는 걸까?”

      그 순간 떠오른 아이디어가
      오늘날 전 세계 자동차의 기본 사양으로 자리 잡은 자동차 와이퍼의 시작이었다.
      그 여성은 바로 **메리 앤더슨(Mary Anderson, 1866~1953)**이다.

      운전자도, 공학자도 아닌 ‘관찰자’의 통찰

      앤더슨은 자동차 기술자도, 발명 전문가도 아니었다.
      그녀는 미국 앨라배마 출신의 부동산 사업가였고,
      때마침 뉴욕 여행 중 교통수단에 대한 불편함을 직접 경험한 일반인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도면으로, 설계로, 특허로 구체화했다는 점이 그녀를 특별하게 만든다.

      수동 와이퍼 시스템: 간단하지만 혁신적

      그녀가 1903년에 발명한 장치는 단순한 구조였다.

      • 차 유리 외부에 부착된 고무 블레이드
      • 내부 조종 레버로 블레이드를 앞뒤로 움직이게 하는 기계 장치
      • 운전자가 앉은 채로 조작 가능, 시야 확보에 획기적인 개선 제공

      이전까지 운전자는

      • 직접 차를 세우고
      • 밖으로 나가 창문을 닦거나
      • 아예 창을 열고 고개를 내밀고 운전해야 했다.

      이 불편함을 없앤 앤더슨의 와이퍼는 안전성과 효율성 모두에서 자동차 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미국 특허청, 그리고 외면당한 시장

      메리 앤더슨은 1903년 미국 특허청에
      **수동식 유리창 청소 장치(US Patent No. 743,801)**를 출원해 정식 특허를 획득했다.
      그러나 그녀의 발명은 당시 자동차 제조업체들로부터
      **“너무 복잡하고, 운전자의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채택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가 여성이었기 때문, 그리고 기술자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용성과 필요성이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동차 기술에 대해 뭘 아느냐"는 편견 앞에 가로막혔다.

      특허 만료 후, 시장은 그녀의 기술을 채택했다

      앤더슨의 특허는 17년간 유지되었지만,
      상업적 계약은 한 건도 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특허가 만료되자,

      • 포드
      • 크라이슬러
      • 제너럴 모터스
        등 대형 자동차 회사들이 비슷한 장치를 차량 기본사양으로 탑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무런 수익도 명예도 얻지 못한 채
      기술 도입의 선구자로서만 조용히 사라졌다.

      오늘날의 영향력: 자동 와이퍼, 센서 와이퍼의 뿌리

      오늘날 차량에 탑재된

      • 자동 감지 와이퍼 시스템
      • 속도 연동 와이퍼
      • 와이퍼 히터 및 스프레이 연동 기능
        이 모든 기술은 사실상 앤더슨의 ‘운전 중 조작 가능’이라는 개념 위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유리창을 닦기 위해 정차하거나 위험한 상황에서 눈을 치우던 일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녀가 남긴 진짜 유산

      메리 앤더슨은 단순히 자동차 부품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 불편을 기술로 해결하는 여성의 사고력”**을 보여줬다.
      그녀는 과학자가 아니었지만,
      관찰하고, 생각하고, 구체화하며, 기술을 변화시킨 실용 발명가였다.

      그녀의 이름은 자동차 회사의 명판에는 새겨지지 않았지만,
      운전자의 시야 속에, 매 순간 와이퍼의 움직임 속에 살아 있다.

      5. 조세핀 코크레인 – 현대 식기세척기의 창시자

      미국의 상류층 여성 조세핀은
      하녀가 깨뜨린 그릇을 보며 “손대지 않고 접시를 닦을 방법은 없을까?”라고 고민했다.
      결과는 압력 회전식 세척기계, 바로 현대 식기세척기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사망한 후, 빚을 갚기 위해 직접 사업에 뛰어들어
      여성으로서 드물게 기술 전시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6. 패트리샤 배스 – 흑인 여성 최초의 안과 레이저 수술기 발명가

      미국의 안과 의사 배스는
      레이저를 이용한 백내장 치료기기(LASEK)를 발명한 과학자였다.
      그녀는 흑인, 여성, 의료인이라는 삼중 장벽 속에서도 특허를 획득했고,
      후진국 안과 질환 퇴치를 위한 국제 활동에 평생을 바쳤다.

      7. 안나 콘클린 – 안전 가스스토브의 발명자

      19세기 후반, 집안 화재가 빈번하던 시절.
      안나 콘클린은 온도 자동 조절 기능을 가진 가스스토브를 발명했다.
      이는 당시 여성들이 가사 중 직면한 위험을 기술적으로 해결한 사례였다.

      남성 중심의 기술 박람회에서 외면받았지만,
      그녀의 기술은 현대 가스레인지의 시작점이 되었다.

      8. 엘레노어 루시브 – 장거리 통신 기술의 기반을 만든 여성

      전보와 초기 전화선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신호의 감쇠였다.
      엘레노어 루시브는 장거리 전송 시 신호 강도를 유지하는 변조 기술을 개발했다.
      AT&T 연구소에서 일했지만, 그녀의 이름은 공식 특허 목록에 없다.

      기술은 남았지만, 발명가는 기록되지 않은 사례다.

      9. 스테파니 콸렉 – 방탄복 소재 케블라(Kevlar)의 개발자

      듀폰 연구소의 여성 화학자 스테파니 콸렉은
      강철보다 5배 강하고, 가볍고 유연한 섬유 케블라를 합성했다.
      이는 군용 방탄복, 헬멧, 소방복, 항공기, 우주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명 구조 기술에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듀폰의 브랜드만 주목받고,
      그녀는 뒤늦게서야 과학계의 조명을 받았다.

      10. 로즈 톰슨 – 여성 위생용품의 선구자

      1930년대, 로즈 톰슨은
      여성의 생리 위생과 편의성을 고려한 다회용 패드 구조를 개발했다.
      당시 금기시되던 ‘여성 위생’이라는 영역에 도전하면서
      실제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구조적 설계를 제안했다.

      이후 다양한 위생용품 기업에 기술이 확산됐지만,
      그녀의 이름은 산업에서조차 남지 않았다.

      11. 그녀들의 발명을 다시 기록해야 하는 이유

      이 여성 발명가들은 단지 기계를 만든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대 사회가 외면한 문제를 발견하고,
      현실적 불편을 기술로 해결한 실천적 지식인들이었다.

      • 이들의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진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가 무시했기 때문이다.
      • 특허는 남았지만, 정체성은 지워졌고,
      • 기술은 남았지만, 가치는 평가받지 못했다.

      이제는 잊혀진 여성 발명가들을 다시 복원하고,
      그녀들의 창의성과 용기를 공식적인 과학사 속으로 초대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