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니의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에 대해서 글을 작성합니다.

  • 2025. 5. 17.

    by. 지아니13

    목차

      1. 왜 어떤 인물은 역사에서 사라지는가?

      우리는 학교에서 역사를 배운다. 뉴스와 책, 박물관과 다큐멘터리도 과거를 전한다.
      하지만 이 수많은 정보 속에서도 늘 한 가지 질문이 따라붙는다.
      “왜 우리는 이 사람을 지금까지 몰랐을까?”

      역사에서 사라진 인물은 단지 운이 나빠서가 아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다.
      주류 정치의 틀을 벗어났거나, 이념의 경계를 넘었거나,
      혹은 단지 여성, 하층민, 지역민,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공적 기록에서 밀려났다.

      기억되지 못한 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고 한다.
      역사의 공백은 무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다.
      ‘누가 남았는가’보다, ‘누가 빠졌는가’를 묻는 것이
      진짜 역사 복원의 출발점이다.

      2. 교과서와 언론, 공적 기록이 만든 망각

      “기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간주된다. 망각은 기억보다 더 정치적이다.”

      우리는 역사 교육을 통해 과거를 배운다.
      하지만 그 배움은 단지 ‘과거의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물을 기억할 것인지, 무엇을 잊을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이 선택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과서, 언론, 공공 기록이라는 공식적인 서술 매체는
      기억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힘을 가진다.

      그리고 이 힘은 때때로, 아주 많은 이름을 지워버린다.

      1) 교과서: 공적 기억을 결정하는 ‘검열된 서사’

      한국의 교과서는 교육부의 교육과정에 따라 제작되고,
      국가가 검정하는 제도를 따른다.
      이 구조는 일관된 교육 내용을 보장한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권력의 시선과 정치적 분위기가 내용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1970~80년대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던 시기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나 노동자 투쟁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2020년대 고등학교 교과서 기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중 이름이 명시된 인물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다.

      또한 여성, 지역인물, 청소년 지도자, 종교적 소수자 등
      다층적 정체성을 가진 인물들은 ‘교과서 분량’이라는 명분 아래
      축소되거나 부록으로만 언급된다.

      202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 전국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7종 중
      • 여성 독립운동가 1인 이상이 실린 교과서는 단 2종
      • 그나마도 평균 3줄 미만의 서술로 정리됨

      즉, 교과서가 ‘사실’을 지운 것이 아니라
      기억될 기회를 박탈한 셈이다.

      2) 언론: 현재의 서사를 지배하는 기억의 문지기

      언론은 가장 빠르게 사람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매체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이름을 스쳐 지나가는 장치이기도 하다.

      기자는 선택한다.

      • 누가 뉴스의 중심이 될 것인가?
      • 어떤 사건이 중요하게 다뤄질 것인가?
      • 어떤 인물은 주인공으로, 어떤 인물은 조연으로 설정할 것인가?

      이 선택은 ‘객관’이라는 이름 아래
      사회적 구조와 상업적 논리를 반영한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반까지의 언론 보도를 보면
      장애인 운동, 여성노동자 파업, 외국인 노동자 사망 사건 등은
      단신 기사로 다뤄지거나, ‘사건 사고’란에 포함되었다.

      ❚ 최근에는 일부 언론이
      ‘숨겨진 인물 조명’이나 ‘역사 인물 복원 기획’ 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물 보도의 80% 이상은
      정치인, 연예인, 기업인, 스포츠 스타 등
      ‘기록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집중돼 있다.

      결국 언론도 무엇을 조명하지 않는가로 기억을 만들고,
      그 공백 속에서 수많은 시민은 역사로부터 배제된다.

      3) 공공 기록의 부재: ‘없는 사람’이 되는 공식 경로

      국가기록원, 보훈처, 지방자치단체의 역사문화부서, 박물관 등
      공공기관의 기록은 법적·행정적 지위를 담보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 기록들이 '사건 중심' 또는 '문서 기반'으로만 관리된다는 점이다.
      개인의 입체적 생애, 비공식 활동, 지역 내 역할 등은
      공식 행정문서에 기입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한 지역의 독립운동가가
      일제 강점기 시절 마을 주민에게 독립신문을 배포하며
      비밀리에 교육운동을 벌였다고 하자.
      그가 체포되지 않았고,
      문서로 남긴 글도 없다면,
      국가기록원이나 보훈처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등록할 수 없다.

      즉, 그 사람은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부정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살았고, 싸웠고, 바꿨다.
      그러나 그 증거가 남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모르고,
      교과서에도 쓰지 않는다.”

      정리: 망각은 실수가 아니라 구조다

      교과서와 언론, 공적 기록은
      우리가 ‘아는 역사’를 결정짓는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는 선택된 사람만 기억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구조를 탓하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누가 빠졌는지를 묻고,
      누락된 기억을 발굴하고,
      그 빈칸에 이름을 다시 써 넣는 작업
      을 해야 한다.

      망각을 복원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역사를 다시 쓰는 첫 번째 방법이다.

      3.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이들의 실제 사례

      언론도 외면한 사람들: 침묵 속에 사라진 역사 속 인물 찾기

      “역사를 만든 건 지도자만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이들이 세상의 축을 돌렸다.”

      기억되지 못한 인물들은 단지 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세상의 방향을 바꿨고,
      사람들의 삶을 지켰고,
      다음 시대를 준비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들의 이름은 교과서에 없다.
      뉴스 헤드라인에도 오르지 않았다.
      단지 소수의 연구자, 지역 주민, 후손들만이 그 존재를 기억할 뿐이다.

      지금부터 소개할 인물들은,
      바로 그 잊힌 역사 속 주인공들이다.

      1) 김마리아 – 여성 독립운동의 외교 최전선

      김마리아(1892~1944)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유일한 여성 외교사절로,
      국제연맹에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며 세계를 향해 조선의 독립을 외친 인물이다.

      •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도쿄 유학생운동에 참여
      • 국내 여성독립운동 조직인 대한애국부인회 주도
      • 고문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일본 경찰에 체포
      • 출옥 후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 연락원으로 활동

      그러나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그녀의 이름은 생략된다.
      이는 여성이라는 정체성과 비정규 외교 경로의 활동이
      공식 기록에서 배제되기 쉬운 구조를 보여준다.

      “남자만 독립을 말하란 법이 있습니까. 나는 내 핏속의 조국으로 말하는 겁니다.”
      — 김마리아의 구술 중

      2) 장순애 – 김근태의 어머니, 국가폭력을 폭로한 보통의 어머니

      1985년, 당시 서울대 병원에 실려 온 고문 피해자 김근태.
      그의 어머니 장순애 여사는 병원 로비에서 아들의 고문 흔적을 공개하고,
      기자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이 아이 몸 좀 보세요. 이게 나라입니까?”

      장순애 여사의 이 외침은
      1987년 6월항쟁 이전, 군부정권의 폭력을 공론화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는 아들 김근태는 기억했지만,
      그를 살려낸 ‘어머니의 정치’는 조용히 지워졌다.
      장순애는 기록되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만 입소문으로 존재할 뿐이다.

      3) 윤희순 – 최초의 여성 의병장

      1907년, 강원도 평창 지역에서 **윤희순(1860~1935)**은
      여성들만으로 조직된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직접 군자금을 조달하고 의병 활동을 지휘했다.

      • 남편 유홍석과 함께 의병 전투 조직
      • 여성들을 무기 제조, 식량조달, 부상자 치료 등에 배치
      • 최초로 여성 의병가를 지어 민중의 항일 의지를 고취

      윤희순의 의병 활동은 남성 중심 의병사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그녀의 이름은 2000년대 들어서야 연구자들에 의해 본격 조명되었다.

      “나라가 없는데 부엌일이 무슨 소용이냐. 나는 총 대신 가슴을 내놓겠다.”
      — 윤희순 의병장 유고 중

      4) 정모 양 – 5·18 당시 숨진 고등학생 시민군

      1980년 5월 21일, 광주 금남로.
      ‘정모 양’은 당시 17세였으며,
      5·18 당시 의료 지원을 위해 친구들과 약국에서 약을 구해 시민군에게 전달했다.
      그러다 총격으로 사망했다.

      당시 보도는 없었고, 시신은 익명 처리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30년이 지난 2011년,
      동창의 제보와 희생자 유족회의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정모 양의 죽음은 단순한 참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의료 지원을 하다 사망한 최초의 미성년 여성 시민군이다.
      하지만 기념비에도, 교과서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다.

      5) 홍은택 – 전태일의 동료, 이름 없는 노동자의 초상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를 외치며 몸에 불을 질렀고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곁에는 수많은 동료들이 있었고,
      그중 한 명이 홍은택이다.

      홍은택은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함께 일하며
      일일근무시간 단축과 임금 인상 요구서를 작성한 이 중 한 명이었고,
      전태일 사망 후 평화시장노조 창립을 위해 밤낮으로 조직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몇 번의 체포와 고문 후 정신적 트라우마로 공장 일을 그만두고,
      이후 소리 없이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어떤 동판에도 새겨지지 않았다.

      정리: 위인은 아니지만, 역사의 주인이었던 사람들

      이 인물들은 모두 ‘영웅’이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엔 흔한 사람,
      심지어 주변에서도 주목받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과 말, 선택은
      결과적으로 세상의 물줄기를 바꿨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이런 이름을 찾고, 부르고, 기록하는 것이다.
      교과서가 알려주지 않아도,
      뉴스에 나오지 않아도,
      우리의 글과 말이 그들을 역사 속으로 다시 불러오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당신은 아마도 나를 모르겠지만,
      내가 없었다면 지금 이 역사는 없었을지도 몰라요.”
      — 익명의 노동자, 1987년 구술사 중

      4. 시민이 복원하는 ‘이름 없는 역사’

      “기억되지 못한 자들을 기록하는 건, 이제 시민의 몫이다.”

      역사는 더 이상 ‘국가’만이 쓰는 것이 아니다.
      전문가, 교사, 언론인,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기록자가 되고, 발굴가가 되고, 스토리텔러가 되는 시대다.

      특히 이름 없이 사라졌던 사람들,
      공적 기록에서 지워진 인물들,
      그들을 다시 역사 속으로 불러내는 일은
      이제 시민의 손끝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 복원’이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작고 조용한 실천에서부터 출발한다.

      1) 가족의 기억에서 시작되는 사적 역사 쓰기

      많은 사람들은 역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낀다.
      하지만 바로 자신의 가족 이야기에서부터 복원이 시작된다.

      예를 들어,
      충청남도 논산에서는 한 30대 여성이
      할아버지의 오래된 일기장을 디지털로 정리하다
      그가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수송을 방해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지역 보훈처와 협력하여
      독립유공자 신청을 하고, 마을에 기념비를 세웠다.

      서울 마포구에서는 한 중학생이
      증조모가 여성 항일운동 단체에 속해 있었다는 할머니의 기억을
      교내 프로젝트로 정리하여 학교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지역 역사관에서 정식 구술사 자료로 채택되었다.

      이처럼 작은 기억 조각 하나
      공공 역사로 확장되는 사례는 전국 곳곳에서 늘고 있다.

      2) ‘시민 기록가’로 활동하는 사람들

      서울 성북구, 광주 광산구, 대전 유성구 등에서는
      지자체 주도로 시민 구술기록단, 마을기록가 양성 프로그램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 은퇴자, 교사, 청년, 주부 등이 참여해
        지역 원로, 여성노동자, 소수자 등과 인터뷰를 진행
      • 구술 내용을 정리해 아카이브북, 마을 신문, 팟캐스트로 제작
      • 일부 기록은 문화재청이나 보훈처, 지방교육청에 정식 등록되기도 한다

      이들은 더 이상 비전문가가 아니다.
      공적 기억의 빈틈을 메우는 실천자이자,
      '역사 생산자'로서의 시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국가가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
      학계가 접근하지 못한 목소리를
      바로 이들이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3) 디지털 아카이브와 블로그, 개인의 기록이 모이면?

      디지털 시대의 시민은
      자신의 블로그, 유튜브, 인스타그램, 개인 출판을 통해
      자신이 발굴한 인물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다.

      전북 익산에서는 한 시민이 운영한
      ‘이름 없는 독립운동가들’ 블로그가 조회 수 50만을 넘기며
      정식 도서로 출간되었고,
      해당 블로그 덕분에 유족이 뒤늦게 서로를 찾아
      기념행사를 함께 열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는 ‘#오늘의숨은인물’ 해시태그로
      청소년들이 하루에 한 명씩,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인물을 소개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온라인 운동을 펼쳤다.

      이처럼 기억은 더 이상 박물관 유리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하고, 나누고, 연결할 수 있는
      참여 가능한 자산이 되고 있다.

      4) 해외의 기억 복원 운동에서 배울 점

      해외에서는 이미 ‘기억 복원’이 시민 참여형 문화로 정착되어 있다.

      독일 베를린 – ‘기억의 돌(Stolperstein)’ 운동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름을 골목길 바닥에 작은 돌로 새김
      누가 죽었는지보다, 어디서 살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복원

      미국 버지니아 – 지역 고등학생이 주도한
      ‘숨겨진 흑인 교사 명예회복 프로젝트’
      교사 2명의 구술을 통해
      학교 도서관 이름을 바꾸는 데 성공

      프랑스 – ‘이름 없는 영웅의 날’ 지정
      시민 제안으로 만들어진 기념일로,
      국가가 인정하지 않은 저항 인물의 생애를 매년 소개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기억은 제도보다 앞서야 하며,
      공식보다 삶의 체취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5) 왜 시민이 써야 하는가?

      기억은 오래된 공공기록 속에서 잠자고 있지 않다.
      그것은 늘 누군가의 마음, 책상 서랍, 낡은 사진 속에서
      “나를 꺼내 달라”고 속삭이고 있다.

      우리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나눈다면
      비로소 역사는 완성될 수 있다.

      “기억을 복원하는 시민은
      단순한 과거 수집가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미래 설계자다.”

      5. ‘배제된 자’를 다시 부르는 일이 중요한 이유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가치를 정당화하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프레임이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 사람들…

      • 역병을 막기 위해 헌신한 간호조무사
      • 시위를 촬영한 이름 없는 시민 기자
      • 노동자의 권리를 외친 막노동꾼
      •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을 대신 받아준 통역자

      이들은 모두 공공의 기억에서는 사라졌지만,
      공동체의 변화에는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들
      이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세상을 바꾸지 않았던 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의 이름을 되찾고,
      그 이야기를 다음 세대에게 공유하고 쓰는 것이다.

      마무리하며: 당신이 남길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후손’이자
      ‘다음 세대의 조상’이다.
      오늘 우리가 남긴 기록,
      우리가 복원한 이름 하나하나가
      역사의 다음 문장이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이 묻고 쓸 차례다.
      “왜 우리는 이 사람을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