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상실의 시를 남긴 여인, 이옥봉을 기억하라

조선 중기, 이옥봉은 사랑과 이별, 여성의 고독을 한시로 담아낸 대표적인 여류 시인입니다. 그녀의 삶과 시를 통해 여성 문학의 또 다른 뿌리를 만납니다.

이옥봉은 누구인가?

**이옥봉(李玉峰, 생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이자,
사랑과 상실, 여성의 고통과 그리움을 시로 기록한 한국 여성 문학사의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녀는 유교 질서가 강하게 작동하던 시기,
여성의 문학적 목소리가 쉽게 드러나지 못하던 조선 사회에서
자신만의 감정과 언어를 한시(漢詩)라는 전통 양식 안에 풀어낸 드문 여성 시인 중 한 명입니다.

정확한 생애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그녀의 존재는 시에 의해 증명되고 기억되며,
문헌 자료와 후대의 평가를 통해 한양 문단과의 교류, 당시 문인들과의 시문 교류가 있었음이 확인됩니다.
특히 이옥봉은 단순히 여성으로 시를 썼다는 차원을 넘어서,
사랑과 이별, 슬픔과 회한, 고독과 감정의 파고를 매우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언어로 풀어낸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옥봉의 출신에 대해서는 양반가 출신설과 관노 혹은 중인·천민 출신설이 나뉘어 전해지는데,
만약 그녀가 실질적으로 양반 계층 밖의 인물이었다면,
그녀의 문학 활동은 더욱 강한 사회적 제약과 억압을 넘어서 이룩한 성취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창작의 제약을 받던 시대에,
계급적 한계마저 뛰어넘고 자신의 감정과 언어를 기록한 창작의 주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옥봉이 한시라는 고전적·격식 있는 문체로 감정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한시는 당시 남성 문인들의 전유물에 가까웠고,
정제된 문체와 엄격한 운율 속에서 감정의 진폭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옥봉은 그러한 틀 안에서
자신의 슬픔, 애절함, 절망, 사랑을 정갈하게 직조해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연정의 토로가 아닌,
한 여성의 내면이 얼마나 깊고 보편적인 주제를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옥봉은 남성 중심의 문단 질서 속에서도 문학적 동등성을 얻고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으며,
여성 문인이자 감성적 지성으로서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그녀의 시에는 단아한 형식 속에 절절한 감정이 스며 있고,
그 감정은 시대를 넘어 지금의 독자에게도 공감과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 그녀는 여성 문학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인물로 평가받으며,
감성적 기록문학의 선구자, 그리고 잊힌 이름이 아니라 되살려야 할 목소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이별, 상실을 시로 남긴 여인

여성의 감정, 조선시대 시가의 중심에 서다

이옥봉이 남긴 시 작품들은 대부분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애절함,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자아 성찰과 존재에 대한 고뇌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 연정이나 정서의 토로가 아니라,
감정을 금기시하고 침묵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의 성리학적 사회 질서 속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느끼고 견뎌야 했던 감정의 구조를 문학적 언어로 형상화한 중요한 기록입니다.

당시 여성에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곧 자기 주장을 하는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었고,
문학이라는 매체 자체가 남성 중심의 전유물이었던 시대에
감정을 글로 옮기고 그것을 ‘시’라는 형식으로 공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옥봉의 시는 문학 이상의 의미, 즉 사회적 발언이자 여성 주체로서의 정체성 선언으로 읽힙니다.

특히 이옥봉은 결혼 이후 남편과 이별하게 되는 사건을 통해 깊은 고통과 상실을 경험했고,
그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과의 결별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기대되던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 버린 자신의 존재를 다시 돌아보는 전환점이 됩니다.
그녀의 시는 그 상처를 꾹꾹 눌러 담은 언어들로 가득하며,
그 감정은 사적인 통곡이 아니라 여성 전체의 내면을 대변하는 보편적 감성으로 승화됩니다.

“아침 저녁 네 얼굴 그리며 눈물 마르지 않으니 / 베개를 적신 마음, 그 누가 알아줄까.”

이 짧은 구절만 보아도, 그녀의 시는 단지 눈물을 흘리는 연인의 노래가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이해받지 못하는 여성의 내면,
그리고 사회가 외면한 존재의 무게를 시로써 질문하고 증언하는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문단에서 여성의 시는 보통 ‘부덕한 감정의 유희’로 폄하되기 쉬웠지만,
이옥봉의 작품들은 이러한 편견을 뒤엎을 만큼 문장 구조의 정제미, 감정의 진정성, 주제의 보편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리움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약한 감성’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적 진실로 끌어올렸으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시가의 중심에 여성의 감정이라는 주제를 당당히 올려놓은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또한 그녀의 시는 오늘날의 독자, 특히 MZ세대 여성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왜냐하면 이옥봉이 겪은 사랑의 상처, 관계의 붕괴, 자기 부정, 외로움은
현대인들이 겪는 감정의 풍경과도 매우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시가 400년 전 쓰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읽어도 전혀 낡거나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 감정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진솔하며,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옥봉의 시는 그래서 단지 “사랑을 그린 여성의 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한 여성의 목소리이며,
감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깊고 중요한 기록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국 여성 문학사의 가장 귀한 자산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시로 묶어냈고, 그 시는 다시
여성들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존재의 흔적을 이어주는 감정의 연대가 되었습니다.

이옥봉의 대표작 세계

작품명                                   주요 주제                                        시적 특징 및 의의

 

《이별가》	사랑과 이별의 아픔, 기다림	사실적 감정 묘사와 절제된 표현의 미학
《추야몽(秋夜夢)》	고독, 꿈, 재회에 대한 그리움	환상과 현실의 경계, 여성 감성의 절절한 울림
《상심가》	남편과의 단절, 인생 무상함	자아의 해체와 상실감을 담은 초기 여성 자전시
《정한가》	지속적인 그리움과 회한	고전적 격식 속에 담긴 감정의 직접성, 시대 초월성

 

왜 지금, 이옥봉을 기억해야 할까?

그녀의 시는 여성 문학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옥봉은 조선 중기라는 남성 중심의 유교 사회에서,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드러낸 최초의 여성 중 하나였습니다.
그녀는 정규 교육을 받기 어려운 신분이었고,
양반가의 여성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관노 출신이라는 설까지 있을 정도로 사회적 제약이 컸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시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세우고, 자신의 내면세계를 기록한 독립적 주체였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문학은 남성의 시선 아래 수용되거나 남성 문인의 보조물처럼 취급되곤 했습니다.
문학 창작은 철저히 ‘남성의 몫’이었고, 여성의 언어는
감상적, 감정적,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되어 문학의 ‘주류 텍스트’로 올라서지 못하는 시대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이옥봉은 그런 경계에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단순히 연정을 읊는 데 머무르지 않고,
삶의 부조리와 억압, 관계의 균열, 인간 존재의 상실감까지도 고전적 형식인 한시에 담아냄으로써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감정과 언어를 통해 얼마든지 깊이 있는 사유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해석하고 기록한 초기 여성 자기서사(Self-narrative writing)의 기원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왜 슬픈가?’, ‘왜 이별이 아픈가?’, ‘이 감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오늘날 수많은 여성 창작자들이 던지는 본질적 물음이며,
그 물음을 16세기 조선에서 이미 언어로 옮겼다는 점에서 이옥봉의 문학은 놀라운 선구적 가치를 지닙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녀가 이 모든 것을 문단의 일원으로 공인받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루어냈다는 사실입니다.
공식적인 문인 단체에 소속되지 않고, 사회적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한 채
오직 시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문학적으로 증명한 그녀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류 문화에서 소외되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수많은 비주류 창작자들의 선행 사례이자 정신적 계보로 이어집니다.

그녀가 쓴 시는 오늘날처럼 SNS에 실시간으로 반응을 얻는 것도 아니었고,
비평가들이 길게 분석해주는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는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조선 여성은 말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신화를 조용히 무너뜨리는 증거이자 유산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옥봉은 글을 쓰는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스스로 기록자가 되었고, 표현자가 되었으며, 문학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시는 단순한 옛 시가가 아니라,
한국 여성 문학의 기원을 설명하는 언어적 유전자이자,
지금 여성 문학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길잡이입니다.

여성 창작자의 상처와 회복의 서사로 읽히는 이유

이옥봉의 시 속에는 단순히 아름다운 감성이나 정제된 문학성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의 시가 온전히 ‘삶의 아픔’을 기초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사랑을 꿈꿨지만 그 꿈은 깨어졌고,
혼례라는 사회적 제도 속에 들어섰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했으며,
자신의 존재와 재능을 세상에 증명하려 했지만 그 이름은 오랫동안 기록되지 못한 채 잊혀졌습니다.

이옥봉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창작자로서
무시당하고, 소외되고,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이유를 감내하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감정을 ‘시’라는 형식으로 기록하고 남긴 인물이었습니다.
그녀가 쓴 시는 그래서 단지 정서적인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처 받은 여성 창작자의 목소리이자,
자기 존재를 언어로 회복하려는 절실한 시도였던 것입니다.

그녀의 생애 서사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MZ세대 여성 창작자들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자기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려 하면 ‘과하다’는 말을 듣고,
정체성을 드러내려 하면 ‘무리수’라 조롱당하며,
감정의 언어를 써 내려갈수록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유로 외면당하기도 하는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이옥봉은 먼 조상이 아니라, 너무나 가까운 동료처럼 느껴지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시를 통해 아픔을 치유했고,
존재를 지워지지 않게 만들었으며,
자신이 겪은 현실의 무게를 글의 밀도로 전환시켰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자기서사 기반 창작, 감정의 기록, 비주류 정체성의 언어화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그녀의 시는 사회가 외면한 여성의 감정을 어떻게 고전이라는 정제된 언어 안에 담아냈는가,
그리고 어떻게 ‘공감’이라는 정서를 통해 시대를 넘어 읽힐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텍스트입니다.
이옥봉의 시가 오늘날의 창작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슬픔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슬픔을 타인의 언어가 아닌 ‘자기 언어’로 바꿔 낼 줄 아는 힘을 지닌 최초의 여성 창작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현대 여성 창작자들—특히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이들,
자기 삶을 기록으로 바꾸려는 이들, 주류가 아닌 경로를 택한 이들—과의 서사적 연대가 형성됩니다.

이옥봉은 사라져야 할 여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지우는 시대에 맞서,
시를 통해 끝까지 ‘나’를 쓴 사람입니다.

그녀의 기록은 우리가 창작의 의미를 묻고,
감정의 언어를 다시 읽고,
여성이 표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역사적 정당성을 재확인하는 데 있어 반드시 되살려야 할 서사적 유산입니다.

이옥봉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

핵심 요소                         기존 평가                                  현대적 재조명 포인트

 

문학 장르	연정 중심의 한시	감정 서사의 근간, 여성 자아 기록 문학의 출발점
정체성	문단 외부의 이방인	감정과 언어를 무기로 삼은 최초의 ‘비주류 크리에이터’
시의 감성	애절함 중심의 정서 표현	감정의 직접성, 현실 기반 서사, 자기 서사의 전범
여성 문학사 기여도	제한적으로 평가됨	선도적 여성 서정 시인으로서의 독자적 문학사 재편 필요성

 

마무리 메시지

이옥봉은 단지 한 남자를 그리워한 슬픈 여인이 아닙니다.
그녀는 사랑과 상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언어화한 조선의 여성 창작자였습니다.

“그대여, 떠났는가.
남겨진 나는 눈물로 하루를 짓는다.”
— 《이별가》 중에서

이옥봉을 기억한다는 것은
여성의 감정이 억압되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그것을 말하려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가 문학을, 창작을, 감정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