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엔 없지만 기억 속엔 있다: 구술사로 본 무명의 인물들
1. 구술 역사란 무엇이며 왜 중요한가?
‘역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연대기, 문서, 공식 기록을 떠올린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글을 남길 수 없었고,
그렇기에 ‘기록되지 않은 채’ 살아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결코 아니다.
구술 역사(oral history)는 바로 이런 기록되지 않은 기억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방식이다.
- 어르신들의 회고
- 마을 공동체의 전승
- 민요, 설화, 의례, 족보
이 모든 것이 역사적 단서를 담은 살아 있는 기록이다.
특히 문자 해독 능력이 낮았던 여성, 하층민, 식민지 민중, 노예 출신 집단의 경우
구술 전승은 자신들의 유일한 자서전적 수단이었다.
2. 문서가 사라진 시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인물들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문자와 기록은 오랫동안 소수의 특권이었고,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자만이 ‘공식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록되지 않은 이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로 전해진 존재들
문서가 남지 않은 시대, 사람들은 기억을 입으로 물려주었다.
구전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한 인물의 생애와 시대, 감정과 평가를 기억의 흐름 속에 담는 방식이었다.
- "우리 할머니는 매년 그 사람 제삿날이면 술 한 잔 놓고 울었어."
- "그 형님이 없었으면 저 고개 넘어갈 길도 없었대."
- "이 마을에 물길 튼 건 그 노인이지, 도장은 안 찍었지만 다 알아."
이처럼 구술은 글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살아 숨 쉬게 하는 또 하나의 역사 기록 방식이었다.
농민, 광부, 어부… 이름 없는 민중의 영웅들
글을 남길 수 없던 가장 대표적인 계층은 바로 노동자들과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시대를 살아냈지만, 기록에는 ‘집단’이나 ‘신분’으로만 등장했다.
농민 | 항쟁, 수해 복구, 공동체 지도자에 대한 회고 중심 |
광부 | 탄광 사고 생존자, 작업장 내 형님 문화로 계승 |
어부 | 풍랑 속 구조자, 노 젓는 명인 등 지역민 기억으로 전해짐 |
예를 들어, 경상남도 통영의 한 바닷마을에서는
태풍 때 12명의 생명을 구한 어부 이야기가
공식적인 언론 기사 없이도 50년 넘게 주민들의 추모제와 설화로 남아 있다.
여성, 문서 밖의 역사 주체
여성은 특히 역사 기록에서 가장 많이 지워진 존재였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은 '가정의 일원', '누군가의 아내'로 불렸을 뿐,
그 자신으로서 남겨진 경우는 드물었다.
구술로만 전해진 여성 인물 사례:
- 동학 농민운동에 참여한 여성 전령: 이름 없이 ‘꽃신 신고 달렸던 언니’로 회자
- 조선 전기 마을 의녀(醫女): 약초 쓰는 법과 손 치유 기술이 구전으로 전해짐
- 3.1운동 만세 시위 주도한 이름 없는 할머니들: 지역별 구술자료와 마을 노인 회고에서만 확인
구술은 여성에게 **자기서사(self-narrative)**를 허락한 유일한 장이었다.
소수민족과 공동체 기억 속 영웅들
글자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문자 사용이 제한되었던 공동체에서는 기억 자체가 역사였다.
- 아프리카 대륙의 그리오(Griot): 가문과 영웅들의 연대기를 외워서 전달한 전문가
- 북미 원주민의 전사 이야기와 의식 속 인물 묘사
- 히말라야 셰르파 공동체의 사망한 고산 가이드들의 구전 전기
이들의 구술은 지역 공동체의 뿌리를 형성하는 동시에,
소속감과 정체성의 원천으로 작용해왔다.
기록은 없지만 증언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국가 기록, 신문, 교과서, 박물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 어르신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이름
- 공동체의 제사상에 올라오는 누군가
- 노래와 설화, 벽화에 그려진 얼굴들
은 구술을 통해 여전히 살아 있다.
즉, 구술은 ‘비공식적인 사망을 부정하는 행위’이자,
기억으로 그들을 다시 세계에 존재하게 하는 제2의 역사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요약 정리
- 구술로 전해진 인물들은 문자 없는 세계의 역사 주체
- 여성, 농민, 노동자, 소수민족의 기억은 구술을 통해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 문서보다 더 생생하고 진실된 역사적 단서들이 구술 속에 담겨 있다
- 우리는 지금 그 기억들을 모아, 잃어버린 인물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3. 구술만으로 복원된 실제 인물 사례 3가지
문서 한 줄 남기지 않았지만,
수십 년, 때론 수백 년 동안 말로만 전해져 내려온 인물들이 있다.
이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돼,
구술 채록, 민속학 조사, 지역 기억을 통해 다시 역사로 복원되었다.
1) 김복동 할머니 – 증언으로 전 세계를 바꾼 이름
1916년생, 경남 양산 출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위안소에 강제 동원되었지만,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침묵 속에 살아왔다.
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피해를 증언한 것은 무려 70세 이후의 일이었다.
- 한 편의 공식 문서나 사진도 없이,
- 단지 자신의 목소리와 기억만으로
일본군 위안소의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그녀의 증언은
유엔 인권회의에 전달되고,
다큐멘터리·연극·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세계 각국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기록이 증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증언이 역사를 다시 쓴 대표 사례라 할 수 있다.
2) 제주 4·3 사건 무명 여성 생존자 – ‘사라진 마을’을 복원하다
1948년 발생한 제주 4·3 사건은
한국 현대사 최대의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하지만 수많은 희생자와 생존자의 이름은
당시 기록에도, 정부 문서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운 것은 바로
마을 주민들의 구술과 생존자들의 기억이었다.
- “엄마가 등에 업고 산으로 도망가셨어요.”
- “그날, 그 언니가 막아섰지. 우리가 살아났지 뭐.”
- “군인이 불을 질렀는데, 누구는 집이 타고 누구는 시체를 묻고….”
이러한 기억들은
‘사건기록관’에 수록되고,
제주4·3 평화공원의 위령비에 이름이 새겨졌으며,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작품으로도 재탄생했다.
이 사례는 지역 공동체 전체가 말로 기억하고,
그 기억을 모아 이름 없는 희생자를 복원한 공동 역사 작업이었다.
3) 노예 해방 후 구술된 미국 흑인 생존자들 – 이름 없는 삶을 말로 되찾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를 공식 폐지했지만,
노예로 살아간 수많은 흑인의 삶은
문서로도, 언론으로도 남아 있지 않았다.
1930년대, 미국 정부는 ‘연방 작가 프로젝트(FWP)’를 통해
노예 출신 고령자들의 구술을 체계적으로 채록하기 시작했다.
예:
- “어머니는 이름도 몰랐어요. 주인이 번호로만 불렀거든요.”
- “밤이면 노래를 불렀어요. 그게 우리 책이었죠.”
- “도망치다 발을 다쳤고, 산에서 나흘을 굶었지요.”
이러한 기록은
2,300건 이상의 구술 자료로 정리되었고
미국 국립문서관(NARA)과 의회도서관에서 보관되며
지금은 흑인 인권교육의 필수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단 한 줄의 문자 기록 없이,
말과 기억만으로 역사에 복귀한 수천 명의 존재들이다.
정리하며
이 세 사례는 모두 말로 시작된 역사다.
- 자신이 겪은 일을 말로 기억한 사람
- 그것을 귀 기울여 들은 사람
- 기록이 아닌 기억으로 역사를 다시 쓴 사람들
구술은 사라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행위이자,
존재 자체를 세계에 다시 선언하는 역사 쓰기다.
4. 구술 기록의 한계와 신뢰도, 어떻게 보완할까?
- 구술은 ‘사라진 역사’를 되살리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기록물처럼 객관적이고 검증된 정보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다.
말은 유연하고, 기억은 흐릿하며, 감정은 섞인다.
그렇기 때문에 구술 기록은 비판적이고 정제된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 - 1. 기억은 왜곡될 수 있다
- 사건 순서가 뒤바뀌거나
- 본인이 직접 겪지 않은 일을 자신이 겪은 것처럼 기억하거나
- 공동 경험이 하나의 인물에게 집중되는 경우도 많다.
기억은 명확하지 않고 조각으로 남는다.
예를 들어 전쟁 생존자의 증언에서는
공포감만 뚜렷하고 구체적 날짜나 위치는 흐릿한 경우가 많다. - 2. 감정이 사실을 덮을 수 있다예를 들어:
-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에서는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강조
- 가족 또는 종교적 명예를 지키기 위해 일부 사실을 생략하거나 수정
- 민족, 성별, 계급 간 갈등이 개입될 수 있음
- 3. 말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 증언자가 사망하거나 병에 걸리면 기록 불가능
- 녹음·녹화 장비가 없는 지역은 아예 자료화 자체가 어렵다
- 일부 구술자는 기록을 꺼리거나 두려워해, 말한 내용을 남기길 거부하기도 한다
지역 박물관, 연구소, 도서관 등과 연계한 공공 저장소 구축이 필수적이다. - 4. 객관성 논란: 신화와 사실의 경계예:
- “그는 열 명을 맨손으로 물리쳤대.”
- “산신령이 그 사람에게 꿈에 나타나서 길을 알려줬지.”
역사학적으로는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고, 설명의 틀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보완 전략 요약
- 결론: 구술은 객관이 아니라 진실의 또 다른 형태다우리는 구술을 역사로 만들기 위해
비판적으로 읽고, 책임 있게 보존하며,
존엄하게 다뤄야 한다. - 구술은 때로 문서보다 더 생생하고 살아 있는 증언을 담고 있다.
완전무결한 사실은 아닐 수 있지만,
말하는 사람의 삶과 감정, 시대의 분위기와 공동체의 기억을 반영한다. - 문제 보완 방법
기억의 불완전성 다중 인터뷰, 사건 비교, 사진·지도 활용 감정 개입 사회학적 맥락 분석, 교차검증 보존의 어려움 디지털 녹음·영상 기록, 공공 아카이브 연계 사실/신화 혼재 문화사적 해석과 역사적 검토 병행 - 어떤 구술은 사실과 전설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야기가 미화되거나, 신화적 상징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 문서 기록은 영구적 보존이 가능하지만,
구술은 그렇지 않다. - 구술은 말하는 사람의 감정 상태와 신념에 깊이 영향을 받는다.
자신이나 공동체에 유리한 방향으로 회상할 수도 있고,
상대의 잘못을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경우도 있다. - 이럴 때는 단일 증언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중 교차 증언을 수집해야 한다.
- 인간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다.
수십 년 전의 사건은 자연스럽게 선택적 회상과 무의식적 편집을 겪는다.
5. 역사 공백을 메우는 민중의 기억력
기록은 권력의 도구였다.
문자 기록이 있는 자만이 역사를 쓰고, 남겼고,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제 기억의 권력이 부상하고 있다.
- 국가가 외면한 인물도
-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도
- 교과서에 단 한 줄 나오지 않는 인물도
말로 전해지고, 사진으로 회고되며, 증언으로 살아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삶을
구술이라는 방식으로 다시 역사 속으로 초대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구술은 ‘기록되지 않은 자들을 위한 마지막 문’이다.
누구도 기록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잊히지 않았다.
“말은 기록이 되고, 기억은 역사가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입에서
잊힌 이름 하나가 다시 세상에 불리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