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니의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

잊혀진 역사 속 인물 탐구에 대해서 글을 작성합니다.

  • 2025. 6. 13.

    by. 지아니13

    목차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을 뒤흔든 독립운동 조직 ‘의열단’은 단순한 테러 집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작전은 철저히 계획되고, 준비되고, 계산된 지하 정보전이자 첩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가 기억해온 것은 오직 폭탄을 던진 사람의 이름뿐입니다.

      그 폭탄이 어떻게, 어디서, 누구의 손을 거쳐 도착했는지에 대한 질문은 너무 오랫동안 잊혀졌습니다.

      작전을 완성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독립운동은 종종 한 장면으로 요약됩니다.
      ‘폭탄이 터졌다’, ‘총성이 울렸다’, ‘누군가 목숨을 걸고 외쳤다’.
      그 장면 중심에는 한 명의 ‘주인공’이 있고,
      그는 거의 언제나 남성이며, 거의 언제나 무기를 든 사람입니다.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한 방의 폭발 뒤에 수십 겹의 손길이 있었고,
      그 작전을 완성한 사람은 따로 있었습니다.

      1. 준비는 조용히, 치밀하게

      의열단의 작전은 충동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공격에는 사전 조사, 장소 물색, 목표 분석, 정보 교류, 자금 조달, 장비 확보가 뒤따랐습니다.

      예를 들어, 김상옥 의사가 종로 경찰서를 공격했을 때
      그 폭탄은 우연히 그의 손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폭탄을 제작한 사람,
      그것을 들여온 사람,
      경찰서의 구조를 파악한 사람,
      그가 도착할 숙소를 정비한 사람…
      수많은 공작원의 손을 거쳐 ‘최종 실행자’에게 도달한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작전은 시작되지도, 성공하지도 않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일본 경찰은 "폭탄은 어떻게 유입됐는가"를 가장 먼저 수사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진짜 작전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2. 설계는 '위장' 속에서 이뤄졌다

      공식 작전 회의는 없었습니다.
      일제의 감시망 속에서는 찻집, 여관, 사진관, 시장 골목, 장터가 모두 ‘전략 공간’이었습니다.

      • 찻집 사장은 실은 의열단 연락책
      • 노점상은 경찰 동선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정보원
      • 사진관 현상기는 암호 문서를 전달하는 통로
      • 책장 뒤 서랍엔 작전 명세서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위장과 일상 속에 숨은 작전 설계자들이었으며,
      표면적으로는 평범한 시민, 상인, 하녀, 유학생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도에서 X 표시를 결정했기 때문에
      누군가가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장소를 타격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혼자 한 일이 아니다”라는 침묵의 합의

      놀랍게도, 작전을 완성한 다수의 사람들은
      광복 후에도 자신이 한 일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명예’보다
      조직의 생존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 공적 평가 시스템
      폭탄을 던진 자, 체포된 자, 순국한 자 위주였기 때문에
      그 외의 공헌은 ‘입증할 길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당했습니다.

      그래서 정보를 연결한 사람,
      피신로를 짠 사람,
      작전을 제안한 사람,
      자금을 조달한 사람들은
      “내가 한 일은 조직의 이름으로 한 것이다”라며
      스스로를 역사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4. 작전의 완성은 ‘하나의 생태계’였다

      의열단의 작전은 단순한 ‘결행’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 생태계였습니다.

      • 전략가가 정보를 정리하고
      • 실행자를 교육하며
      • 정보원이 실시간 상황을 파악하고
      • 여성 공작원이 공간을 열고
      • 후원자가 자금을 조달하고
      • 연락책이 신호를 전달하고
      • 그리고 마지막 순간, 한 사람이 손을 들어 폭탄을 던졌습니다

      이 흐름 속에 누가 중요하고, 누가 덜 중요한가를 나눌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아니면 작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작전을 완성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그들을 기억한다는 것

      지금까지 우리는 역사를 너무 ‘효과’ 중심으로 보아왔습니다.
      무엇을 이뤘느냐, 누가 결과를 만들었느냐만을 따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 그 결과를 가능하게 만든 과정은 무엇이었는가?
      • 그 과정의 중심에 있었던 ‘무명의 설계자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역사는 단지 이름의 집합이 아닙니다.
      그 이름을 만들어준 수많은 무명의 시스템이 쌓여 이루어진 공동의 서사입니다.
      우리는 그 서사를 복원하는 일을 지금 시작해야 합니다.

      여성 공작원들 – 가장 완벽한 은폐자

      폭탄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그 경로에는 수많은 감시, 검문,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 긴장감 넘치는 지하 네트워크 속에서,
      가장 유연하게 움직였고, 가장 은밀하게 작동했던 존재—
      그들이 바로 여성 공작원이었습니다.

      그들은 무기 없이 싸웠지만, 작전의 핵심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의심받지 않고, 말없이, 정확히 해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면서도 아이러니했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감시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여자는 의심하지 않는다” – 일제 감시체계의 맹점

      1920~30년대 일제 경찰의 감시망은 남성 중심의 위험 인물 탐지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수배 전단, 검문 대상, 정보 보고서는 모두 남성 독립운동가 중심이었고,
      여성은 주로 '피해자', '가족', '하녀', '소유물' 정도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통념은 여성 공작원들에게 완벽한 은폐 공간을 열어주었습니다.

      • 기차역에서는 무심한 얼굴로 도시락을 들고
      • 찻집에서는 손님과 웃으며 차를 따르고
      • 여관에서는 침대를 정리하며 문서를 숨기고
      • 시장에서는 소리치며 장사를 하며 암호를 주고받았습니다

      이들은 감시에서 벗어난 정보통이자 작전 전달자였고,
      그 어떤 단속도 이들의 ‘일상’을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2. 일상이 곧 작전이었다 – 위장, 침묵, 통제의 기술

      여성 공작원들은 단순한 전달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투, 걸음걸이, 표정, 옷차림 하나까지 훈련하고 조절하는
      고도의 ‘사회적 위장 기술자’였습니다.

      예를 들어,
      폭탄을 담은 가방을 든 여성은
      그 무게를 아무렇지 않게 소풍 가방처럼 바꿔 들 줄 알아야 했고,
      경찰이 말을 걸면 당황하지 않고 되묻는 연기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때로

      • 수사관의 눈을 피하기 위해
        ‘길 잃은 시골 아낙’인 척 울고,
      • 의심을 피하기 위해
        친구인 척, 연인인 척, 점원인 척 행동했습니다.

      연기와 침묵, 즉흥과 통제
      이 모든 것을 몸으로 익히고 작전에 녹여낸
      그들은 정보전의 숨은 예술가였습니다.

      3. 정보 전달, 은신처 운영, 생존 후방 지원까지

      여성 공작원들이 수행한 역할은 상상을 훨씬 넘었습니다.

      ▪️ 정보 전달

      도청이 일상화된 시대,
      여성들은 말이 아닌 옷핀, 손수건, 색깔, 발소리로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 한 줄의 자수 문양이 ‘작전 개시일’을 뜻했고
      • 매듭의 모양이 ‘위험 신호’였으며
      • 치마의 색상이 작전지의 위치를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 은신처 관리

      여관 주인, 찻집 아줌마, 하숙집 아주머니는
      실제로는 의열단원들의 은신처 관리자였습니다.

      그들은 경찰의 습격을 대비해

      • 문을 두 겹으로 만들고
      • 바닥 밑에 은닉 공간을 파며
      • 손님 명단을 가짜로 기록했습니다

      ▪️ 생존과 자금 확보

      작전 중 필요한 식량, 의약품, 가짜 신분증까지
      모든 물품을 사들이고 숨겨두는 사람도 여성 공작원이었고,
      심지어 자신의 가게 수익 일부를 조직에 헌납하기도 했습니다.

      4. 그러나 그들은 기록되지 않았다

      이 모든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름은 공식 독립유공자 명단에서도 보기 어렵습니다.

      왜일까요?

      • 남성 중심의 ‘투쟁 중심’ 독립운동 서술 방식
      • ‘가정’과 ‘조력’이라는 편견
      • 실명 없이 활동했던 암호명 체계
      • 광복 이후에도 입을 열지 않은 침묵

      이 모든 것이 합쳐져
      그들은 지금까지도 대부분 무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들을 다시 기록하는 일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한 ‘추모’가 아닙니다.
      이름 없는 여성 공작원들의 존재를
      역사의 자리에, 공로의 언어로, 기록의 체계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그들은 조직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조용한 방법으로
      가장 결정적인 작전을 완성한 사람들입니다.

      작전 설계자 – 이름 없이 작전을 그린 전략가들

      의열단의 폭탄은 갑자기 던져진 것이 아닙니다.
      그 폭발에는 수개월 혹은 수년의 준비, 정보 수집, 공간 분석, 심리전 고려가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작전을 설계한 전략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실행자는 기념되었고, 그 장면은 교과서에 실렸지만—
      그 작전을 처음 상상한 사람,
      그 목표를 정하고, 궤적을 짠 사람,
      즉, 이긴 싸움을 가능하게 만든 설계자는 어째서 잊힌 걸까요?

      1. 작전이란 ‘상상력과 예측’의 집합체였다

      폭탄 하나를 던지기 위해 고려해야 할 것은 단순히 “누굴 공격할까?”가 아니었습니다.

      • 그 인물이 어느 길로 출근하는가?
      • 수행원 수는? 방탄 차는 있는가?
      • 주변 골목은 어떤 구조인가?
      • 경찰서는 몇 분 내 도착할 수 있는가?
      • 군중은 몇 시에 가장 몰리는가?
      • 이후 단원은 어디로 피신하는가?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예측’**하는 능력,
      바로 그것이 전략가의 몫이었습니다.

      그들은 자료를 분석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하고,
      그리고 마침내 지도의 한 점에 '타격 좌표'를 설정했습니다.

      이 한 점이 얼마나 정확했는지에 따라
      작전의 성패가 결정됐고, 생명이 오갔습니다.

      2. ‘의사결정자’는 따로 있었다

      우리는 자주 혼동합니다.
      실행자가 곧 설계자라고.

      하지만 실제 항일 무장투쟁에서는 전략가와 실행자가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보안상의 이유이자, 역할 분담의 전문화 때문이었습니다.

      • 전략가는 조직의 흐름과 전체 그림을 봤고,
      • 실행자는 현장의 판단과 기술을 담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석주의 동양척식주식회사 습격 작전도,
      그가 홀로 기획한 것이 아닙니다.
      그 목표 설정, 시간 배치, 탈출 동선, 백업팀 구성은
      모두 의열단 내 전략 담당 조직이 조율한 결과였습니다.

      하지만 작전이 끝나고 역사에 남는 이름은
      언제나 '결행자'였습니다.
      ‘결정한 자’는 늘 익명 뒤로 사라졌습니다.

      3. ‘안전한 침묵’이라는 선택

      전략가는 늘 중심에 있었지만,
      그만큼 노출을 피해야 할 위치였습니다.

      그들은 지휘 체계를 잘 알았고, 조직의 자산을 파악하고 있었으며,
      여러 작전의 실무를 동시에 설계했습니다.

      그래서:

      • 이름 대신 암호명으로 불렸고,
      • 자신이 설계한 작전임을 밝히지 않았으며,
      • 작전이 실패했을 경우 책임 소재를 피하기 위해 기록에서 빠졌습니다.

      이것은 겁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내가 이 작전을 짰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다음 작전을 짤 수 없게 됩니다.

      결국 전략가는 말하지 않는 자였고,
      그 침묵은 작전을 이어가기 위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4. 실록은 폭탄만 남기고, 손은 지웠다

      광복 이후 정리된 독립운동사 대부분은

      • 폭탄이 어디서 터졌는가
      • 누가 죽었는가
      • 어떤 결과를 냈는가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그 타격이 왜 그 장소였는가?”,
      “그 시점은 누가 결정했는가?”,
      “그건 누가 설계하고, 분석하고, 조율했는가?”는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두뇌 구조,
      즉 설계의 계층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름 없이 작전을 그린 전략가들은
      역사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하면서도
      가장 외곽의 자리로 밀려났습니다.

      우리가 이제 기억해야 할 질문

      • 이 작전은 누가 짠 것인가?
      • 그는 왜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는가?
      • 우리는 왜 지금껏 그들의 존재를 상상조차 하지 않았는가?

      이제 독립운동사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합니다.
      **"누가 총을 쐈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그 총의 방향을 정했는가"**도 함께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이름 없이 싸운 설계자들,
      그리고 독립운동을 지속 가능하게 만든 전략의 주인들입니다.

      의열단의 진짜 주역은 누구였을까? 폭탄 뒤에 숨은 무명의 영웅들

      폭탄 뒤의 수십 쌍 손, 우리는 몰랐다

      우리는 폭탄을 기억합니다.
      그날 누가 던졌는지, 어디서 터졌는지, 어떤 피해가 있었는지를 압니다.
      하지만 그 폭탄이 도달하기까지
      수십 쌍의 손이 함께 움직였다는 사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손은 기사를 쓰지 않았고,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으며,
      단 한 줄의 공로표에도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저 폭발음의 이면에 잠긴 채, 침묵 속에서 움직이고, 연결하고, 사라졌습니다.

      1. 누군가 총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그 총을 넘겼다

      폭탄 한 개를 상상해봅시다.
      그것은 단지 무기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노선, 하나의 계획, 하나의 조직의 완성품이었습니다.

      • 그 폭탄은 누군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공장에서 나온 것이 아닌, 망명지의 좁은 방에서,
        약제통, 쇠못, 화약을 조합해 만든 ‘수공 무기’였습니다.
      • 또 누군가는 그것을 국경을 넘어 밀반입했습니다.
        밤길, 철도, 조선총독부의 감시망을 뚫고
        시장의 짐 보따리 사이, 치마폭 안에 숨겨 이동했습니다.
      • 그리고 또 다른 이는 은신처를 정비했습니다.
        의열단원이 숨을 방을 마련하고, 경찰의 단속을 피할 퇴로를 계산하고,
        가짜 주민 명단과 신분증을 준비했습니다.

      이 모든 준비가 맞아떨어졌을 때,
      비로소 한 명의 결행자가 그 무기를 들 수 있었고,
      우리가 기억하는 ‘그 장면’이 성립되었습니다.

      2. 폭탄은 단 한 명이 아니라, 하나의 네트워크가 만든다

      우리는 흔히 "김상옥이 폭탄을 던졌다", "이봉창이 수류탄을 투척했다"는 식으로
      개인 중심의 영웅 서사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역사적 실체는 훨씬 더 복잡하고, 협업적이며, 집단적이었습니다.

      • 작전은 설계자가 필요했고
      • 정보는 연락책이 전했고
      • 공간은 여성 공작원이 숨겼고
      • 도주로는 지하 조직이 개척했으며
      • 모든 비용은 후원자가 부담했습니다

      즉, 폭탄은 네트워크의 집약체였고,
      그 집약을 가능케 한 수많은 손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
      였습니다.

      그 손들이 아니었다면,
      폭탄은 만들어져도 전달되지 못했고,
      전달돼도 목표를 알 수 없었고,
      도달해도 숨을 곳이 없었을 것입니다.

      3. 우리는 몰랐던 게 아니다 – 몰라야 했던 구조였다

      이 모든 손들의 이름이 사라진 건,
      우연이나 관심 부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조직의 전략이었고, 역사의 선택이었고, 구조의 침묵이었습니다.

      • 독립운동 조직은 보안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조력자를 실명 대신 암호명으로만 기억했습니다.
      • 광복 이후 정부는
        공적 평가를 위해 ‘가시적 행동’만 기념하는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 그리고 사회는 "무기를 든 남성" 중심의 전투 서사를 기억했습니다.
        그 안에서 여성, 후방, 실무, 기술, 정보는
        늘 **‘부수적 역할’**로 평가절하되었고,
        그러한 구조는 **"공로 없음 = 기록 없음"**이라는 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폭탄’만 기억하고,
      그 폭탄을 가능하게 한 수십 쌍의 손은 보지 못하게 된 것
      입니다.

      지금이라도 기록해야 할 손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손들,
      하지만 작전의 80%를 책임진 그 손들—
      이제는 그들을 다시 부르고, 복원하고, 기억할 때입니다.

      그 손은

      • 부엌에서 식량을 준비하고,
      • 사진관 뒷방에서 지도를 그리며,
      • 하숙집 벽에 암호를 붙이며,
      • 장터 한복판에서 경로를 흘려보내며 작동했습니다.

      그것은 폭탄보다 조용했지만,
      폭탄이 터지기 전부터 끝난 뒤까지 전장을 지탱한 진짜 동력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의열단의 작전은 하나의 영웅이 아닌, 수십 쌍의 손이 만든 집합체였다."
      그리고 그 손의 흔적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독립운동의 전체를 바라보는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역사는 늘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누가 싸웠는가?”, “누가 이겼는가?”, “누가 희생했는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런 질문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 “왜 어떤 이름은 남고, 어떤 이름은 사라졌는가?”
      • “공을 세운 이들은 다 기념되었는가?”
      • “기억하지 않은 것은 무지였는가, 선택이었는가?”

      이 질문은 단지 과거를 다시 보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누구의 서사를 전하고,
      어떤 이름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를 결정하는 미래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1. “누가 싸웠는가?”에서 “누가 기억되는가?”로

      그동안 우리는
      의열단의 폭탄을 던진 손만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폭탄을 만들고, 옮기고, 숨기고,
      그리고 끝내 기억하지 않도록 침묵한 수십 쌍의 손을 보아야 합니다.

      전쟁은 한 사람이 하지 않습니다.
      한 명의 결행 뒤에는
      수많은 설계자, 지원자, 연결자가 있었고,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 싸웠는가”보다,
      **“누가 기억되지 않았는가”**가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2. “왜 이 이름은 남고, 저 이름은 지워졌는가?”

      의열단의 조직도와 활동기를 보면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결행자 중심입니다.
      하지만 그 곁에 있었던 수많은 조력자, 정보 담당자, 여성 공작원의 이름은
      대부분 암호명으로만 기록되거나 아예 빠져 있습니다.

      • 여성이라서,
      • ‘하급 조직원’이라서,
      • 실행자가 아니어서,
      • 조직 보호를 위해 침묵했기 때문에.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몰랐다’는 게 아닙니다.
      알고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
      혹은 기록해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묻지 않으면,
      이 불균형은 반복되고,
      역사는 늘 소수의 이름만을 기억하는 비대칭의 구조로 고정됩니다.

      3.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

      이제 우리의 몫은,
      단지 위인을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지워진 손들을 복원하는 작업입니다.

      • 이름 없이 작전을 설계한 전략가,
      • 폭탄을 전달한 여성 공작원,
      • 의열단원을 숨긴 하숙집 주인,
      • 암호를 전달한 아이,
      • 자금을 대며 입을 다문 상인.

      이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단지 과거를 보완하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 “우리가 몰랐던 것이 맞는가?”
      • “몰라야만 했던 건 아니었는가?”
      • “기록이 빠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빠지게 만든 것은 아니었는가?”

      그래서, 이제 우리는

      기록된 것만으로 역사를 말하지 않기.
      소리 큰 이름만 기억하지 않기.
      사라진 손과 침묵한 입의 공로를 의심하지 않기.

      이제 우리는
      “무엇이 일어났는가?”에서
      “누가 말할 수 있었고, 누가 말하지 못했는가?”를 질문해야 합니다.

      그 질문이야말로
      우리에게 진짜 역사의 균형 감각을 돌려주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